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향후 4~8년 평화통일에 중요"…지난 15일 넷캘 모임 개최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되짚어 보고, 한국과 북한을 둘러싼 세계 질서의 변화를 논의하는 공공정책 라운드테이블 런천이 15일 LA다운타운 시티클럽에서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5세와 2세 네트워크 단체인 '넷캘(NetKAL)'이 주관한 이날 행사는 '쿼바디스: 새로운 지정학적 세계질서 안의 한국의 위치'라는 주제로 전 외교안보 수석 주철기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스펜서 김 CBOL사 대표, 해나 김 찰스 랭겔 연방하원의원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국과 북한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세계 변화에 맞춰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며 특히 한인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스펜서 김 대표는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위해 ▶북한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 ▶한국의 초당파적인 전략적인 통일정책 마련 ▶꾸준한 경제적 및 인도적 교류가 이뤄질 수 있는 관대한 정책 ▶한국과 북한의 지역안보 체제 구축 ▶한국의 창조적이며 기업가적인 대북한 노선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또 "앞으로 4~8년은 한국이 평화적인 통일을 맞을 수 있는 길을 닦는 데 굉장히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오는 대선에 한인들이 반드시 선거에 참가해 한인들의 목소리를 미 정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나 김 비서실장은 "미국 정부가 한국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려면 한국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미주 한인 개개인이 외교대사라는 마음가짐으로 미국사회에 한국을 알리고 정치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비서실장은 이어 "한국 정책을 움직이는 곳은 연방의회다. 선거 뿐만 아니라 정계에도 실력있는 한인들이 더 많이 진출해 목소리를 내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

2016-08-18

[인물 오디세이] 신동훈 미국조선미술협회 회장, "거친 힘에 매료돼 북한미술 전파에 생애 걸어"

“한국을 떠나 미국서 오래 살다 보면 한국문화가 조금씩 낯설어지는데, 60년 넘게 분리된 남한과 북한은 정서적으로 얼마나 멀어져 있을까요? 통일을 준비한다면 미술문화교류를 통해 정서적 거리를 좁혀나가야 합니다” 1988년부터 100번 가까이 북한 평양을 오가며 북한미술 작품을 수집한 신동훈 미국조선미술협회 회장(사진)은 우리가 북한미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신 회장은 한국과 북한이 체제는 다르지만, 미술은 공유할 수 있다며 북한미술이 지닌 매력에 관해 말했다. 그는 “북한미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거칠고 힘있다”며 “북쪽지역의 산이 거칠고, 추운 날씨 등 험한 자연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또 “그림 안에는 우리민족이 수많은 외침에서 한반도를 지켜온 강렬한 정신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이런 독특한 매력은 미국이나 유럽, 중국, 일본 미술에서 찾기 어렵다.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추구하는 유럽의 수집가나 중국부호들은 북한작품을 사들이고 있다고 신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좋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가 나중에 화폐로 바꾸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유태인들도 북한미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신 회장은 “메릴랜드 락빌에서 화랑을 할 때 유태인들이 관심이 많았다”며 “유태인들은 흥정을 잘하는 데, 예를들어 1만 달러짜리 그림을 3000달러에 달라고 제안한 뒤 결국 6000달러 정도에 사갔다”고 말했다. 2011년 신 회장을 인터뷰한 ‘르몽드’지의 일본 특파원 필립 퐁스 기자는 ‘북녘의 미술가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미술품은 암시장을 형성할 만큼 미술 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며 “북한미술은 한민족 특유의 미감을 지니고 있는 전통적 수묵화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용시킨 특징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유럽의 수집가나 중국부호, 유태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북한미술 작가 중에서도 선우영, 정창모 화백은 최고의 거장으로 불린다. 선우영의 작품에서는 강렬한 채색과 거칠고 힘있는 색채가 두드러진다. 정창모의 작품은 온화한 채색, 활달한 붓의 기운이 특징이다. 신 회장은 “조선화의 거장인 선우영과 정창모 선생님은 남북분단이라는 시대적 운명과 싸우며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살랐던 인물”이라며 “한국 화가로 치면 박수근이나 이중섭 정도 되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선우영의 ‘백두산 천지’와 정창모의 ‘남강의 겨울’은 2005년 제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서울과 베이징, 워싱턴, 뉴욕 등지에서 열린 북화전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2012년 여름에는 경기도 고양시가 ‘고양 600년 기념 풍경남북 전’을 기획해 두 화가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숨은 보화를 찾듯 북한미술품을 수집해 미국과 한국, 전세계에 알리고 있는 신동훈 회장은 경기도 일산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찍 군에 입대, 육군수송학교에서 정비기술을 익혔다. 군복무 중 월남전에 참전해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죽음의 위험은 미국 이민 후에도 계속됐다. 신 회장은 “군에서 익힌 정비기술 덕에 1977년 미국 워싱턴으로 취업이민을 했다”며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받은 월급을 모아 델리숍을 운영했는데 세 번이나 무장 강도가 들어 저와 아내가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식구들의 안위가 보장되는 일을 찾다가 1988년 화랑을 열었다. 신 회장은 “한국화 전문 갤러리를 운영하다 북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북화가 남북을 하나로 이어줄 매듭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에 만주와 선양 등 중국에서 작품을 구했다. 하지만 1년 넘게 수집한 작품이 전부 위작이라는 것을 알고 불살라 버렸다. 이후 신 회장은 제대로 된 작품을 구하기 위해 북한에 직접 들어가기로 했다. 선우영 화백과 정창모 화백을 만나기 위해 어렵게 비자를 받아 북한 만수대창작사에 들어갔다. 신 회장은 “낯설고 두려웠지만 용기를 냈다”며 “1990년 봄 평양시 만수대창작사에서 조선화의 거장인 선우영 선생님과 정창모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신 회장은 두 화가의 그림을 한국과 미국, 유럽에 소개했다. 그는 “서울과 뉴욕에서 북화전을 가진 후 신문과 방송 자료를 만수대창작사에 보여줬더니 민족애가 있는 동포라며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남과 북의 화가들이 전시로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왔다. 2007년 6월 7일부터 9월 7일까지 서울 순화동 갤러리 ‘북’에서 열렸던 ‘남북 대표 작가 2인전-선우영·이숙자’전이 한 예다. 세밀하면서도 농익은 보리밭을 그리는 남쪽 여성화가 이숙자씨와 세세한 붓질로 장엄한 사실화의 세계를 펼쳐내는 북쪽 화가 선우영의 만남은 그림에서 분단도 갈라놓지 못하는 민족성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자리였다. 이 전시회 도록에 ‘섬세함, 공필의 바탕에서 만나다’를 쓴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분단의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역사와 전통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할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썼다. 남과 북의 화가들을 만나게 하는 행사가 안타깝게 불발된 경우도 있다. 독도 사랑에 빠진 한국 화단의 원로 화가 일랑 이종상씨와 선우영 화백의 독도를 주제로 한 2인전은 결국 선우 화백의 때이른 죽음으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2009년 세상을 떠난 선우영 화백에 이어 친형제처럼 다정했던 정창모 화백도 2010년 숨을 거뒀다. 신동훈 회장은 “2010년 정창모 화백이 작품 5점에 낙관을 찍어주며 우리 그림을 널리 알려 달라고 부탁한 게 유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나도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기간 북한미술을 워싱턴 동포들에게 알리기 위해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신동훈 회장이 소장한 북한 미술들은 앞으로 중앙일보 위크엔드 섹션에 ‘지상갤러리’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문의: 신동훈 미국조선미술협회 회장(240-460-1966) 심재훈 기자 shim.jaehoon@koreadaily.com

2016-03-04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